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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실패했다. 25일 이후 일정표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연말까지 모두 솔드아웃. 몇 자리 남은 퍼스트 클래스는 타국에서 학생 신분으로 농구 코트를 뛰는 유학생의 선택지엔 들어가지도 못했다.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겨 보았으나 며칠 전 제 손으로 깔끔하게 밀어놓은 탓에 손바닥은 매끄럽게 미끄러져 목덜미에 정착했다. 목덜미에 닿은 손끝이 차가워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꼭 지금의 상황과 같았다.

 

 연말엔 티켓팅이 어려워 항상 남들보다 부지런히 표를 끊었다. 다만 미국에서 맞이한 첫해의 겨울은 초심이 흐려질까 두려워 고향에 가지 않았다. 고향에 간다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쪽이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그해의 크리스마스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을 들으며 보냈고, 기숙사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유학생 친구들과 함께 지역 광장에 방문해 새해를 맞이했다. 광장 시계탑 앞엔 생전 처음 보는 인파의 사람들이 모여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웃고 있는 풍경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매해 부모님과 함께했던 신년 행사가 떠올라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방송 소리가 커지며 사람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쓰리, 투, 원 “Happy new year!” 이번엔 두 손을 모으지 않고, 눈도 감지 않고, 마음속으로 크게 소원을 외쳤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한 언어가 군중의 소리가 되어 새해를 알리던 그때 비로소 미국에 왔다는 것을, 앞으로도 미국에서 살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

 기숙사로 돌아와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침대 위에 철퍼덕 드러누워 멍때린 지 10분쯤 지났을 때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이슨이었다. 제이슨은 팀에서 센터를 맡고 있는 장신의 선수이자 1년 동안 우성과 함께 방을 쓰고 있는 룸메이트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이 나라에서 편견 없이 대해주는 팀원 중 하나였다. 그는 방금 샤워를 마치고 돌아왔는지 목에 얹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냈다.

 

“무슨 일이야?”

“집에 가는 항공편 티켓팅에 실패했어.”

“연말 티켓팅 말이야?”

 

“응…"  제이슨을 보려 세웠던 몸을 다시 눕혔다. 어쩐지 현실을 되짚게 되는 것 같아 다시 기운이 빠졌다.

 

“연말까지 혼자라면 큰일인데, 너 크리스마스엔 뭐 하는데? 애인도 없잖아.”

 

“그러게 말야…” 장난스러운 말에 정곡을 찔려 말끝을 다시 한번 흐렸다. 그런데 제이슨, 너도 없잖아.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적당히 참았다. 물론 제이슨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야 한다는 처지는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 와서 농구 실력이 많이 늘었다. 객관적인 지표로도 보였지만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농구 실력만큼 늘어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영어 실력이었다. 미국에 온 첫해에는 NCAA 규정상 팀의 정식적인 농구 연습에 참여할 수 없었다. 대신 어학원을 드나들며 초석을 다졌다. 어학원엔 해외 연수를 온 회사원도 있었고, 같은 처지의 유학생들도 있었는데 모두 국적이 달라 친해지진 못했다. 처음엔 아는 단어를 닥치는 대로 나열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들이 기차처럼 쭈욱 나열되기 시작할 때쯤, 우성은 단어 사이사이에 동사를 끼워 넣고 전치사를 붙여주었으며 그럴싸한 문장을 구사하게 됐다.

 

 그러면서 말의 효율성을 따지게 됐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줄을 몰라 참다 보니 꼭 해야 하는 말이 아니면 적당히 참고 살게 된 것이다. 타국의 유학생들은 억울한 일도 많았고 억울해해야만 하는 일도 많았는데, 정우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었으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은근히 피해를 봤다. 눈치를 보는 것도 이방인이 코트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실망감을 숨기지 못하는 불쌍한 룸메이트에게 제이슨은 성탄절을 맞아 찾아온 구세주처럼 본인의 집에 놀러 올 것을 제안했다. "연말에 식사하러 올래? 우리 가족들만 있어도 괜찮다면 말이야."  미국에선 가족들의 식사 자리에 다 큰 자식의 친구가 함께하는 일이 민폐는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좋았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당연하지!"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

 

 

“아, 춥다.”

 까만 밤하늘에 하얀 숨이 흩어졌다. 다 녹지 않은 눈이 듬성듬성 쌓인 마당을 장식한 할로겐 조명들, 문으로 지나오는 길 전나무를 감싼 꼬마전구들, 옆집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석양 같은 주홍색 조명 빛. 마당에서 문으로 지나오는 길 화단을 가득 장식한 할로겐 조명들이 꼬마전구와 어우러져 따뜻한 빛을 냈다. 정우성은 어느 날의 동쪽 게이트가 떠올랐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낯선 땅의 동쪽 게이트에서 그를 맞이해준 것도 제이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모님 또래의 남성이었다. 처음 만난 남자의 턱엔 갈색의 곱슬거리고 거친 수염이 가득했고 조금은 서툴렀지만, 영어가 아닌 우성의 모국어로 자신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팀의 보조 코치로 일하면서 동시에 지역의 스카우터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Welcome Jung!’   제이슨이 들고 있던 스케치북을 가방에 구겨 넣고 악수를 청했다. 악수와 함께 가벼운 포옹을 나누는 순간 시큰할 정도로 진한 향기가 코끝을 찔러왔다. 공항을 가득 메운 가지각색의 언어들, 어느 카페에서 풍겨오던 커피 향기, 눈높이가 비슷한 인파 속에서 바짝 긴장한 탓에 반쯤 놓였던 정신이 번뜩 들었다.

 

 제이슨이 등진 넓은 창으로 석양이 내리쬐어 그의 갈색 머리와 수염이 오렌지빛으로 빛났는데, 그때 정우성은 제이슨의 향기가 지금의 석양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길에서 같은 향기를 스칠 때마다 또 노을빛을 마주하는 순간순간 동쪽 게이트의 석양과 오렌지빛으로 빛나던 제이슨을 떠올렸다. 

“앗 뜨거워!” 

“무슨 일이야?”

“별거 아냐, 괜찮아.”

 모형이라 생각해 스친 촛대의 끝이 뜨거웠다. 깜짝 놀라 모국어로 소리쳤지만, 제이슨은 뉘앙스로 알아차린다. 보폭을 넓혀 성큼성큼 제이슨 곁으로 걸어가 주홍빛 조명이 새어 나오는 새하얀 문 앞에 섰다.

'Knock, Knock!'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우성은 이제 처음 보는 사람과 악수하고 가벼운 포옹을 나누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짧지 않은 미국 생활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움이었다. 여자의 스웨터에선 어렴풋이 기름진 냄새가 풍겼고, 안에서 해방된 따뜻한 공기가 얼어있는 볼을 녹여 기분이 좋았다.

*

“외투는 여기에 걸어놓을게.”

“감사합니다.”  

“커피? 차?”

“차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뜨거우니 조심해.”

 머그잔을 건네주고 제이슨의 어머니도 소파에 자리를 잡아 대화에 참여했다. 낯선 가족 사이에서 불편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다갈색의 가죽 소파 한가운데 앉혀 가족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대화의 주제는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시작해서 농구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아들이 현역 선수로 뛰다 보니 가족들의 농구 관심도 또한 높았다. 아직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 홀짝였다

 

“자네를 기억하네. 최근 친선 경기에서 보았지. 포지션이 가드던가…"

“네. 지금 팀에서 가드를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코트 위의 동양인이 아닌 포지션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신장은 조금 작은 편이야. 그래서 눈에 띄지, 하지만 빠르고 플레이에 센스가 있어서 기억하고 있어. 재빠르고 센스있는 플레이어는 모두의 기피 대상이니까. 파워풀한 플레이도 좋지만, 앞으론 그게 큰 무기가 될 거야.”

 확실히 지금의 미국 농구는 포지션상 빅맨의 파워풀한 플레이가 경기의 흐름을 주도한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드리블, 파워로 압도하는 센터 그리고 림이 부서질 만큼 힘차게 꽂아 넣는 덩크슛. 그만큼 포지션 싸움도 치열했고 센터 선수들은 주목받는 만큼 인기도 좋았다.

 

"가드라 가드는 기민해야 해, 코트의 분위기를 읽고 흐름을 만들려면 절대적이지."

"포지션을 바꾸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중 하나예요. 득점이 아닌 패스 플레이만으로 흐름을 바꾼다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어느 콧대 높은 선수는 코트 위에서도 사람을 차별했다. 가드의 공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열 받아도 참고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실력으로 증명하고 복수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억울했던 경험담은 최대한 간추려 이야기했다. 파워 대 파워, 정면으로 대결하는 건 승산이 희박했다.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렇지, 눈치 볼 일도 많았을 테니…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아. 모든 일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경험도 되고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니까."

"확실히 도움이 됐어요. 사실 전엔 플레이어의 눈치를 볼 일이 많지 않았거든요."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팀으로 넘어왔다. 영어 회화 실력엔 아직도 어설픈 점이 있었지만, 농구 경기를 이야기하는 순간만은 예외였다. 코트 위에 붙어살다 보니 이상할 일도 아니었지만, 사람은 관심 분야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다는 이야기가 있듯 0순위 관심사인 농구 용어와 경기를 설명하는 일엔 아주 능했다.

*

 제이슨의 아버지는 별안간 집을 소개해 주겠다며 어깨를 떠밀었다. 당황했지만, 이 또한 미국의 문화겠거니 싶어 수긍했다. 미국에 와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친구의 가족을 만나고 집까지 놀러 온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2층 끝에 위치한 제이슨의 방에 도착했을 때, 제이슨의 아버지는 두터운 앨범을 챙겨 들고 다시 1층 소파에 자리를 잡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앨범 속 상체만 한 농구공을 들고 있는 어린이는 누가 봐도 제이슨이었다. 가족여행 사진에서도 품에 농구공을 안고 얼굴을 빼다 박은 듯 닮은 형과 함께 웃으며 서 있었다. 웃고 있는 제이슨의 형은 앞니가 하나 비어있었다. 제이슨이 중학생이 되고 본격적으로 농구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앨범이 아닌 스크랩 북이 펼쳐졌다. 사진 아래엔 아버지가 적어 놓은 경기의 내용들이 짤막이 이어졌다.

"괴짜 같지, 아빠가 보스턴 셀틱스의 오랜 팬이라 농구엔 일가견이 있어."

"내가 농구를 좋아​해서 시작한 거지."

 주어는 제이슨이었다. 제이슨도 아버지가 농구를 좋아해 그 영향으로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형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본인과 다를 것 없는 성장 과정이었다. 나고 자란 곳도 다르고, 피부색은 물론 쓰고 있는 언어도 다르다. 하지만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농구를 생각하는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성은 마음속의 어떤 벽이 스르르 허물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땡, 소리와 함께 파이가 완성되고 대화의 장소는 식탁으로 바뀌었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가족의 이야기로 흘렀다.

 

 

“혼자 건너와 지내는 게 쉽진 않겠어.”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국에서 뛰고 싶고요.”

“앞으로도 힘든 일은 많을 거야. 하지만 농구를 하기 위해 먼 나라까지 왔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해.”

 

"꼭 선수 면접장 같네."  제이슨의 어머니와 제이슨이 웃었다. 하지만 정우성은 진지했다.

 

“부모님과 떨어져서 사는 것도… 성인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사는 건 또 별개의 문제거든. 연락은 자주 하고 있나?”

“소포가 자주 날아와요. 시차 때문에 전화는 자주 하지 못하고요, 최근엔 부모님과 이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엔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많이 보고 싶어요. 젊은 청년이 먼 곳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안쓰럽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보통 메일을 보내는 건 어머닌데 내용은 길지 않아요. 아버지는 거의 전화로 안부를 묻고요."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건 어느 나라나 다 똑같아. 얼마나 걱정되시겠어."

 미국으로 넘어와 일 년이 조금 지났을 때 팀원들의 싸움에 휘말릴 뻔했던 적이 있었다. 또래들의 싸움이야 오랜 시간 운동부로 지내면서 숱하게 봐왔지만, 그때는 달랐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어 두려웠다. 주먹도 오가지 않은 이 싸움을 별생각 없이 카드에 적어 보낸 것이 어머니를 걱정시키는 꼴이 되었는데, 그게 부모님의 첫 미국 방문의 계기가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걱정하지 않을 부모는 없어.' 하지만 걱정으로 날아온 것과 달리 부모님은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동부의 도시 두 곳을 더 여행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계속해서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이 자신답지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제이슨의 아버지는 샴페인의 뚜껑을 열고 잔을 돌려 권했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경기 뒤풀이에서 마셨던 샴페인이 꽤 맛있었던 것을 떠올려 두 손을 공손히 내밀어 잔을 받아 들었다. 술을 잘하는 편도 아니니 한잔이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술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니까. 지금의 식사 자리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저녁 식사가 입에 잘 맞아, 샴페인을 곁들이고 싶었다.

"얘가 저보다 친구가 더 많아요."

"절대 아니예요. 저 친구가 그렇게 많진 않아요, 팀원들이 전부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지."

 사실 그다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굳이 정정하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감독님은 미국에 방문했을 때 얼굴을 본 적이 있지만, 고교팀원들과 만나거나 연락을 해본 적이 없었다. 대신 아빠가 전해주는 현지의 스포츠 소식이나 고향에서 취재하러 온 스포츠 기자들에게 활약을 전해 들었다. 그중엔 농구와 관련 없는 진로를 선택한 선배들의 소식도 있었다. 머리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으론 아니었다. 그 외에도 선수로 활동하는 선배들이나 팀의 소식은 검색 엔진에 올라오는 고향의 뉴스로 종종 소식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사적인 안부는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지난주 한 학년 선배였던 매니저 형의 메일이 도착해 있어 회신했던 것이 가장 최근의 기억이다. '다음번 회신엔 팀원들 안부를 한번 물어볼까…' 답지 않은 생각을 해본다.

 두 번째 샴페인 잔을 깨끗하게 비우고,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준비해 주신 디저트까지 싹 비웠다. 다시 가죽 소파로 돌아와 차를 한잔 받아 들고 제이슨 아버지가 좋아했던 농구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응원의 역사가 꽤 깊었다. 그리고 깊은 만큼 이야기는 길어졌다. 샴페인을 마시고 히터 앞에 앉아있으니 잠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꽤 늦었다, 지금쯤은 돌아가야 샤워를 하고 제시간에 누워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이다.

 

*

"정말 지금 들어가도 괜찮겠어?"

"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챙겨주신 쿠키도 맛있게 먹을게요."

"나도 오랜만에 농구 이야기를 해서 즐거웠어. 그러니 태워다 줄게. 잠시만 기다려봐."

 제이슨의 아버지는 스웨터 주머니를 뒤적이다 발걸음을 함께한다. 즐거운 대화도 나눴고, 맛있는 식사도 했으니 남은 시간은 마음먹었던 것처럼 연습해야 했다.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오로지 연습밖에 없었다. 오랜 농구팬의 피드백을 받았으니, 연습을 해야지. 제이슨은 하룻밤을 묵고 갈 테니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충분히 괜찮았다. 오늘 저녁식사로 연말의 트라우마는 이미 좋은 경험이 되었다. 

​ 도로를 달리는 동안 제이슨의 아버지는 틈틈이 농구 이야기를 이어갔고, 정우성은 문득 고향에 있는 아빠가 떠올랐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가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씩씩하게 문을 닫고 기숙사 초입부에 내려서 조금 걸었다. 멀리 기숙사가 보인다. 몇 개의 창에 불이 들어와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정우성은 외로움을 타는 타입이 아니었다. 과거형이다. 미국에 와서 외로움을 알았다. 피부색이 같은 사람만 만나도 반가운 게 유학 생활이라더니, 어쩌다 익숙한 말이라도 들려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제이슨같이 좋은 친구들을 사귀면서 사람에게 의지하는 법도 배워간다. 이 땅의 서쪽에서 뛰고 있는 송태섭도 비슷한 고민을 할까?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고 들었다. 사적인 대화는 해본 적이 없지만, 정우성은 그의 미국 생활을 응원한다. 이왕이면 코트에서 맞붙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유학생은 다 같은 마음일 거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말로만 듣던 향수병인가' 미국에선 노스텔지어라고 했다. 

'Dear, Jung. Happy new year!'

 우편함에 놓인 갈색 포장물을 집어 들었다. 바다를 건너, 여러 도시를 지나오는 경로마다 만난 이정표처럼 들러붙은 여러 개의 우표가 모서리가 살짝 들뜬 채 붙어 있었다. 발신자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년의 부적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새해엔 집에 갈 수 없음을 알리자 급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뒤늦은 크리스마스 카드가 들어있거나 신년 연하장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매년 그렇게 해왔으니까. 확실한 건 먼 땅에서 림을 향해 뛰어오르는 아들의 건강과 행복, 오랜 시간 농구를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추운 날, 아주 먼 길을 날아 왔음에도 여전히 따뜻한 마음이 한가득 담겨있을 것이다.

WhovilleTyler the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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